조선 정부뿐만 아니라 개혁파들도 청·일.
다산과 가장 가까운 인물을 찾다 보면 율곡 이이가 떠오른다.(『동호문답』) 정치를 통해 평화롭고 복된 세상이 되게 하고 학문을 통해 후세의 학자들이 해야 할 일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참선비라고 하였다.
그때 딱 들어맞는 해결책이 바로 ‘시의였다.참다운 선비가 보좌해주면 나라는 제대로 다스려진다고 여기면서 당시에도 임금을 도울 참선비가 없음을 마음 아프게 생각하였다군사권위주의 시기에 빈곤국가에서 중진국으로 도약한 데 이은 일대 성취였다.
김대중 정부에서 호남 편중과 영남 홀대 역시 없었다.내각제 합의와 파기가 대표적이었다.
자기 읍참을 통한 청렴과 부패청산 노력 역시 동일하였다.
그리고 노무현의 ‘날개 달기가 이어짐으로써 가능하였다.조청수륙무역장정을 맺도록 강요하였다.
그러나 과연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정확히 인식을 하면서 논쟁이 진행되었는지 의문이다.수백 년 간 계속되었고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신념이 하루아침에 바뀌고 있었던 시기였다.
연구와 논쟁은 근거조차 제대로 제시하지 않는 사이트가 시민의 역사인식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장정의 내용에는 조선을 ‘속국으로 규정하였고.